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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후이 혹은 현실에 대한 실존적 탐구

게시일: 3 3월 2025

작성자: 에르베 랑슬랭 (Hervé Lancelin)

카테고리: 미술 비평

읽는 시간: 13 분

류샤오후이 작품의 장인적 측면은 재료와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색을 단순한 장식적 또는 표현적 요소가 아닌 구체적인 물질로 다루며 무게와 밀도를 부여해, 고요함의 건축가처럼 그의 구성을 차근차근 구축합니다.

잘 들어봐요, 스놉 여러분, 무미건조한 갤러리를 헤매며 다음 강렬한 감각, 계산된 분노, 사랑해서가 아니라 밋밋한 저녁식사에서 손님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사는 다음 그림을 찾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오늘 나는 여러분이 중국 현대 회화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도전하는 예술가, 리우 샤오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렇다, 끊임없이 같은 실루엣, 같은 여성의 등만을 그리고 있는 그 용기 있는 작가 말이다. 그 마음속에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있는 듯이, 하지만 그 생각이 뭔지 보라!

1975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리우 샤오휘는 상하이나 베이징의 눈부신 조명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랐다. 그는 16세에 중국 수도에 도착해 명문 중앙미술학원(CAFA)에서 공부를 이어갔고, 나중에는 그곳 벽화학과에서 가르쳤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경력일 수 있으나, 다시 생각해 보라, 리우 샤오휘에게 평범한 것은 없다.

그의 작품에서 즉시 눈에 띄는 것은 같은 주제를 집착적으로 그리고 또 그리는 단일증상의 결의다. 그의 캔버스에는 불확실한 지평선을 향해 걷는 여성의 등 또는 거울 앞에서 옷을 입는 등의 단순한 동작을 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제가 아니라 그것이 다뤄지고, 재작업되며, 지칠 때까지 반복되는 방식이다.

부조리극: 류 샤오후이와 시지프 신화

이 여성들의 등을 주의 깊게 보라, 흰색 블라우스와 어두운 치마를 입은 실루엣들이다. 그들은 마치 카뮈가 재해석한 시지프 신화를 연상시킨다. 영원히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지만 다시 굴러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그리스 영웅처럼, 리우 샤오휘는 반복과 겉보기에는 헛된 노력으로 이루어진 역설적인 창작 과정에 몰두한다 [1]. 그는 완벽한 형태, 아니면 “정확한” 형태를 찾기 위해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수정한다.

이 카뮈적 부조리주의와의 평행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이렇게 쓴다: “정상으로 향하는 투쟁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2]. 마찬가지로, 류 샤오후이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물보다도 그림 그리는 과정 자체이다. 그가 몇 주, 때로는 몇 달 동안 같은 캔버스를 다시 작업할 때, 바로 그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프랑스 철학자는 우리에게 시지프를 행복한 존재로 상상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류 샤오후이가 하는 일로, 겉으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을 실존적 확증으로 변형시킨다. 그림의 각 층은 결정의 증거이자 예리한 의식의 순간이 된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그림 그리기 방법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한다” [3]. 이 지속적인 불확실성은 약점이 아니라 그의 창조적 힘의 근원이다.

그의 작품의 부조리한 차원은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혹은 오히려 제목이 없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제목 없음, 복도”, “제목 없음, 푸른 잔디”, “제목 없음, 거울”… 이 겉보기엔 중립적인 태도는 사실 우리의 해석을 유도하지 않겠다는 거부를 숨기고 있다. 마치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보는 것은 과정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방대한 작업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작업은 보이지 않지만 각 붓질과 구성 결정에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류 샤오후이가 겉보기엔 평범한 이미지를 이용해 깊은 철학적 문제들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의 전시 중 하나가 “시지프의 수수께끼”라고 이름 붙여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반복되는 우리의 행위의 겉보기 무의미함에 직면하게 하면서도,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

계몽으로서의 영화: 류 샤오후이에 미친 오즈의 영향

시지프 신화가 류 샤오후이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를 제공한다면, 그의 영화와 특히 일본 감독 야스지로 오즈의 작품과의 관계 역시 또 다른 근본적인 열쇠이다.

류 샤오후이가 오즈의 “술맛”을 보면서 등 뒤에 흰 셔츠, 어두운 치마, 굽 있는 신발을 신은 여성의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연히 포착된 이 이미지가 그의 “등 뒤의 실루엣” 시리즈 탄생의 집착으로 발전했다 [4]. 그런데 왜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장면에 매료된 것일까?

오즈는 미니멀리즘적이고 관조적인 스타일로 유명하며, 일상의 작은 세부에 주의를 기울이고, 고정된 앵글과 자주 다다미 위에 앉은 관찰자의 눈높이에서 촬영한다. 영화 평론가 도널드 리치는 “오즈는 우리에게 삶이 거대한 비극이나 대단한 행복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작은 순간들의 연속임을 보여준다”고 썼다 [5]. 이 일상성의 미학을 류 샤오후이는 자신의 회화에 받아들인다.

하지만 더 있다. 오즈에게 화면은 결코 무심하지 않으며, 항상 보이지 않는 긴장과 내재된 감정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류 샤오후이의 등 뒤 실루엣은 단순한 형식 연구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존재감과 침묵하는 감성을 지니고 있다. 등 돌린 모습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 우리의 시선을 벗어나는 것,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타자의 본질을 은유하게 된다.

오즈의 영화 고유의 시간성, 즉 서스펜스된 순간들, 이야기의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무르는 장면들은 류샤오후이의 회화에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찾는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속도를 늦추고, 명상하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예술 평론가 존 버거가 말했듯이: “회화는 사진과 달리 고유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 [6]. 류샤오후이는 각 화폭에 문자 그대로의 시간 층을 겹쳐 이 특징을 증폭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류샤오후이가 정적인 매체에서 영화적 영향을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는 영화의 움직임을 모방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오즈 영화가 지닌 가장 회화적인 특징, 즉 구도와 구성의 힘만으로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포착하고자 한다.

류샤오후이와 오즈의 관계는 단순한 헌사나 영향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시간, 문화, 매체로 나뉜 두 예술가 사이의 대화이며, 동일한 미학적 감수성, 세부에 대한 주의, 절제의 표현력에 대한 같은 믿음으로 결합되어 있다.

최근 작품들에서, 형형색색의 기하학적 형태들이 표현을 방해할 때, 류샤오후이는 오즈의 정제된 미학에서 벗어나지만, 구성에 대한 주의와 일본 영화 감독을 특징짓는 절제된 수단들은 유지한다. 파란 삼각형, 노란 원들은 시각적 구두점 요소가 되어, 오즈 영화에서 내러티브와 분리된 듯한 과도 장면처럼 감정적 연속성을 창조한다.

“현실”에 대한 불가능한 탐구

류샤오후이는 집요한 회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놓치는 듯한 무언가를 추구한다: 진실, 혹은 그가 “믿을 수 있고 진짜인 것(可靠的真实)”이라고 부르는 것. 그러나 회화에서 진짜란 무엇인가? 보이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인가? 내면의 진실을 표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회화 그 자체의 물질성인가?

류샤오후이는 우리에게 진짜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끝없는 탐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나는 진짜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회화 행위를 통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7]. 이것은 우리의 인식과 이해의 한계를 인정하는 깊이 감동적인 겸손함이다.

진짜에 대한 이 추구는 류샤오후이가 최근 작품에서 거울 모티프를 도입할 때 특별한 차원을 갖는다. 거울은 벨라스케스 이후 전통적으로 회화에서 표현의 상징이었지만, 그에게는 존재론적 질문 도구가 된다. 무엇이 더 진짜인가, 형상인가 그 반사인가? 몸인가 그 이미지인가? 원본인가 복제인가?

거울 앞에서 옷을 입거나 벗는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류샤오후이는 아찔한 무한 되먹임(미장 앙 아비)에 대한 표현을 창조한다. 그는 표현의 표현을 그리며, 자크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의 표현 본질과 초월적 의미에 닿을 수 없음을 환기하는 거울 놀이를 펼친다 [8].

이 현실에 대한 의심은 류샤오후이가 자신의 화폭 표면을 다루는 방식에서 형식적으로 드러난다. 반복해서 칠하고 고치고 층을 겹치면서, 그는 거칠고 거의 조각된 질감을 만들어내어 회화의 물질성 자체에 주목하게 한다. 이 거친 면들, 후회의 흔적들, 붓질 자국들은 매체, 형식, 그리고 현실 자체와의 끊임없는 싸움의 가시적인 상처가 된다.

질 들뢰즈가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에서 쓴 것처럼: “회화는 형상을 형상주의에서 떼어내야 한다” [9]. 바로 이것이 류 샤오후이(Liu Xiaohui)의 작업 방식이다. 그는 인식 가능한 형상에서 출발하지만, 끊임없이 다듬고 변형하면서, 그것을 완전히 형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닌, 중간적이고 혼란스럽고 분류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화시킨다.

류 샤오후이의 최근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추상적인 기하학 요소, 선명한 색상의 원, 삼각형, 직사각형, 를 도입하여 재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 형태들은 마치 화가가 형상 안의 현실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결국 순수한 색채와 형태의 현존에서 현실을 발견한 것처럼 회화 과정 자체에서 솟아나는 듯하다.

이 불가능한 탐구, 잡을 수 없는 것을 붙들려는 집요함에는 깊은 감동이 있다. 류 샤오후이는 회화가 확신의 예술이 아니라 의심의 예술이며, 단언의 예술이 아니라 질문의 예술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 한 점 한 점은 열린 질문이며, 현실과의 무한한 대화의 한 조각이다.

수고하는 장인으로서의 예술가

류 샤오후이는 현대의 여러 편견에 거스르는 예술가의 모습을 구현한다. 그는 고뇌하는 천재도, 미디어의 도발자도, 예술 사업가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실로 가서 하루의 일을 꾸준히 하는 근면한 장인으로서 자신을 선보인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난다,”고 그는 고백한다 [10]. 이 수도원 같은 규칙성은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술을 규율이며 일상적인 수행이며 수고로 보는 깊은 인식을 드러낸다. 류 샤오후이는 창작이 갑작스런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인내심 있고 체계적인 작업의 산물인 예술가들의 오랜 전통에 동참한다.

이 작업 윤리는 그의 캔버스의 물질성 속에 표현된다. 계속 다시 칠하고 다듬음으로써 두께와 질감을 획득하며, 이는 투자된 시간과 노력을 증명한다. 그 자신 말하길: “나는 고된 기술을 선호한다” [11]. 그가 겸손하게 “어리석은 기술”(笨功夫)이라고 부르는 것, 윤곽을 조절하고 색조를 완만히 바꾸고 실루엣을 다시 다듬는 데 소비하는 시간, 이야말로 그의 예술 실천의 핵심이다.

이 접근에는 깊은 윤리성이 깃들어 있다. 현대 미술이 종종 속도, 효율성, 무조건적인 새로움을 찬양할 때, 류 샤오후이는 느림, 반복, 심화라는 선택을 한다. 그는 한 캔버스에 수년을 투입하며 끊임없이 재작업하여 문자 그대로 시간의 두께를 부여한다.

이 장인적 차원은 재료에 대한 그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색을 장식적이거나 표현적인 요소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무게와 밀도를 지닌 물질로 다룬다. “나는 색을 벽돌처럼 이용해 쌓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12]. 이 건축적 은유는 의미심장하다. 류 샤오후이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화가적 존재감을 구축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본다.

그의 작업실은 방문한 이들이 묘사하길, 전형적인 현대 미술가의 작업실보다 장인의 작업장과 더 닮았다. 각기 다른 완성 단계의 캔버스들이 쌓여 있고, 때로는 몇 년씩 손질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 작업 공간은 화가의 반복적인 몸짓과 매일의 안무로 리듬을 이루는 끊임없는 활동의 무대가 되어, 그의 실천 그 자체의 본질을 이룬다.

예술 작업을 일상의 노동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폴 발레리의 말 “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고, 단지 중단될 뿐이다”[13]를 떠올리게 합니다. 류샤오후이는 이 관점을 공유하는 듯하며, 그의 그림들은 완성되었다기보다 중단되고, 일시적으로 그 상태로 남겨져, 언제든 다시 수정되고 변화되고 재작업될 수 있습니다.

이 접근 방식에는 깊은 겸손함이 있으며, 예술가가 자신의 재료와 불가능한 과제 앞에서 겪는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현실의 어떤 것을 포착하고, 시간을 견디는 존재를 창조하는 일에 있어서, 류샤오후이는 예술이 재능이나 영감의 문제가 아니라 끈기, 집요함, 그리고 매일의 헌신임을 상기시킵니다.

절제의 예술

류샤오후이의 그림은 극단적인 절제의 형태, 감탄을 자아내는 수단의 경제성을 보여줍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새로움과 선정주의를 갈망하는 미술 시장에서 그는 자발적인 제한과 본질에 대한 집중을 선택합니다.

이 절제가 결코 쉬움이나 빈곤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술 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말했듯이, “더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덜 하는 것이 어렵다”[14]. 류샤오후이의 각 그림은 무수한 결정, 거절, 제거들의 결과물로, 그 단순해 보이는 표현 안에서 드문 밀도를 이룹니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고, 주의 깊게 관찰하며, 음영의 미묘함, 형태의 약간의 변화, 진정한 작품의 부를 이루는 후회의 흔적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산만함과 즉각성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그의 그림은 오랜 주의를 요구하고 보상합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깊이 있는 인간적 차원입니다. 일부 구성의 겉보기 냉담함, 얼굴 부재, 색채 제한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나 감동을 주는 절제된 감정과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아마도 존 버거가 제안한 것처럼 “모든 이미지 뒤에는 항상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15]는 이유일 것입니다. 뒤돌아선 여성의 실루엣, 거울 앞에서 옷을 입는 단순한 동작 뒤에는 다른 실루엣, 다른 동작, 그림의 고고학 전체가 숨어 있어, 각 그림이 예술가가 자신의 매체, 가시적인 것, 그리고 자신과 투쟁하는 증거가 됩니다.

류샤오후이는 중국 현대 미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완전히 전통주의자가 아니며 급진적으로 실험적이지도 않으며, 오직 자신의 질문과 속도, 엄격한 회화 관념에 충실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갑니다. 종종 역사적 혹은 정치적 대서사에 의해 지배되는 미술계에서 그는 친밀하고, 일상적이며, 집요한 탐구를 선택합니다.

그의 작품은 회화가 시대에 뒤떨어진 매체가 아니라 가시적과 비가시적, 시간과 물질, 존재와 부재를 탐구하는 특권적 공간임을 상기시킵니다. 반복되는 실루엣, 정제된 공간, 무한히 반복되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 류샤오후이는 보는 것, 표현하는 것, 세계에 존재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깊은 명상을 제공합니다. 그는 심화, 인내, 작은 것에 대한 주의, 한계의 수용이라는 또 다른 길을 제안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하는 겸손과 인내의 교훈입니다.


  1. Camus, Albert. “시지프 신화”. 갈리마르, 1942.
  2. 동일 출처.
  3. Liu Xiaohui와의 인터뷰, Artron News, 2018.
  4. “예술 인터뷰: 화가 Liu Xiaohui”, Athos Magazine, 2018.
  5. Richie, Donald. “오즈: 그의 삶과 영화”.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1977.
  6. Berger, John. “보는 방법”. 펭귄 북스, 1972.
  7. He Jing, “Liu Xiaohui: 시지프의 수수께끼”, 전시 텍스트, Antenna Space, 상하이, 2015.
  8. Derrida, Jacques. “문법학에 대하여”. Les Éditions de Minuit, 1967.
  9. Deleuze, Gilles. “프랜시스 베이컨 : 감각의 논리”. Éditions de la Différence, 1981.
  10. “Liu Xiaohui: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을 얇게 만들게 해줘”, Artron News, 2013.
  11. “Liu Xiaohui: 가장 힘든 ‘멍청한 기술’을 사용하여 역류에 맞서다”, Sina Art, 2018.
  12. “Liu Xiaohui × He Jing: 그림은 긴장된 경쟁이 아니라 완전히 편안한 연습이다”, Hi Art, 2020.
  13. Valéry, Paul. “해변 묘지에 관하여”. 갈리마르, 1933.
  14. Rosenberg, Harold. “새로움의 전통”. Horizon Press, 1959.
  15. Berger, John. “또 다른 이야기 방식”. 판테온 북스,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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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인물

LIU Xiaohui (1975)
이름: Xiaohui
성: LIU
다른 이름:

  • 刘晓辉 (간체자)
  • 劉曉輝 (번체자)

성별: 남성
국적:

  • 중국

나이: 50 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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